전체 글 241

K에게...

오늘 너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촌스럽게 잡고 이러진 않을게.다만 그동안 좀 더 많은 얘기를 못 나눴다는 사실이 아쉬워.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지.그런 선택과 결정을 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너를 생각해.나이가 든다는 건 선택의 횟수와 가지가 늘어 난다는거야.살아보니 그래.그냥 안 좋은 시기가 있는 것 같아.여러 가지로 자신감이 결여된 시기.소중한 사람들이 머물지 못하고 떠나가는 시기.여러번 마음을 다시 고쳐 보지만 기껏해야 고작 시간을 버티고 있는 시기.고민해서 말해 보지만 금방 우스워지는 시기.얼굴이 못되고 미워지는 시기.사는게 기쁨이 아니고 고통인 시기.무얼 해도 흥이 안 나고 가라앉는 시기.사춘기마냥 내 마음인데 나도 모르겠는 시기.그냥 어디 서 있어도 외딴 기분이 드는 그런 시기..

너의 이야기 2025.04.25

어느 부족 이야기

사냥에 적합한 체형을 지니고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전사가 있다. 산과 바다로 들판을 뛰어다니며 혁혁한 공과를 올리는 훌륭한 전사다. 그는 잡아온 짐승과 생선들을 의기양양해 하며 던져 놓는다. 그런 그들이 속해 있는 부서는 이름부터 포스 쩌는 사냥부다. 사냥부에서 잡아다온 사냥감들을 받아 들고 이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바르고 먹기 좋게 해체하여 장기보관 하게끔 만들어 부락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일명 요리부다. 사냥부에서는 자신들이 사냥해온 먹잇감을 요리조리 돌려보는 요리부가 탐탁치 않다. 이쪽 지방에서 쓰는 용어로 “미친년이 아(애기) 낳으면 씻어 조진다”며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다. 하지만 이 두 부서의 존재 자체가 부족을 위함이고, ..

나의 이야기 2023.10.31

RE: 계절의 미래가 그러하듯

존경하는 정준호교수님! 오래전에 관람했던 연극 에쿠우스가 떠올랐습니다. 진짜 말은 등장하지 않지만 정말 말 같았던 배우들의 몸짓과 안무가 생생히 남아 한동안 실제 말을 보고 온 듯한 착각과 혼돈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연히 들렀던 경마공원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던 경주마를 가까이서 지켜 본 기억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말은 실제이든 허구이든 제게 있어 ‘멋지다’로 기억되고 표현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언젠가 제주도 숲길에서 말뚝에 메어져 있던 조랑말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멋지게만 보았던 말들 속에 다소 왜소하고 볼품없는 모습에 적잖이 실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그 조랑말이 떠오릅니다. 본디부터 화려한 적도 없었지만 그 옛날부터 봇짐을 짊어지고 묵묵히 나르던 조랑말... ..

나의 이야기 2023.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