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정준호교수님!
오래전에 관람했던 연극 에쿠우스가 떠올랐습니다.
진짜 말은 등장하지 않지만 정말 말 같았던 배우들의 몸짓과 안무가 생생히 남아 한동안 실제 말을 보고 온 듯한 착각과 혼돈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연히 들렀던 경마공원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던 경주마를 가까이서 지켜 본 기억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말은 실제이든 허구이든 제게 있어 ‘멋지다’로 기억되고 표현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언젠가 제주도 숲길에서 말뚝에 메어져 있던 조랑말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멋지게만 보았던 말들 속에 다소 왜소하고 볼품없는 모습에 적잖이 실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그 조랑말이 떠오릅니다.
본디부터 화려한 적도 없었지만 그 옛날부터 봇짐을 짊어지고 묵묵히 나르던 조랑말...
예전 즐겨보던 ‘걸어서세계속으로’ TV 프로그램에 그리스 산토리니 마을이 소개되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동경해 마지않던 지중해 푸른바다가 펼쳐졌을 때의 감흥이 체 가시기도 전에 관광객을 태우고 그 좁디좁은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던 조랑말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아파 왔고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산토리니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랑말은 한결같이 등에 한가득 짐을 싣고서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밖에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TV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질주하는 조랑말은 본 기억이 없습니다.
요즘 들어 그 조랑말이 떠오릅니다.
주인 곁에서 사람들 곁에서 오래전부터 그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나르던 조랑말.
멋진 근육도 없고, 화려한 갈기도 없고, 멋진 왕자님을 태우지도 않았지만, 그 등에 지어진 짐이 나의 짐을 대신 져주는 듯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조랑말의 걸음에 헛헛한 마음이 달래졌습니다.
어느덧 나 역시 조랑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려한 적도 없고, 멋진 적도 없고, 어릴 적부터 밥벌이의 고달픔을 잊은 적도 없이 지금껏 묵묵히 삶의 무게를 견디며 걷고 있는 나에게서 조랑말의 모습을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삶들이 화려 할 수 없듯이 나를 투영한 조랑말의 삶처럼 나를 보면서 그 어떤 누군가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껏 멋지게 달려온 경주마든, 짐을 짊어지고 걸어 온 조랑말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과 소명을 다하며 오늘을 살아온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힘찬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어제도 오늘도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내일도 수고하실 그 한결 같은 마음에도 감사드립니다.
정준호교수님!
원장님으로의 승진과 부임을 축하드립니다.
진즉 알고는 있었지만 인사가 늦었습니다.
자리의 고독함과 견뎌야만 하는 그 무게를 알기에 마냥 축하하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상처럼 변함없는 앞선 인사에 감사드립니다.
2023.02.08
금바다에서 김영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