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송구영신

ebond 2020. 3. 8. 16:24

 

송 구 영 신

 

 

해로 이사를 온 것은 대한민국 격동의 시절인 1980년 초등학교 6학년 초가을 무렵. 나름 화려한(?) 부산 충무동에서 살다가 가도 가도 끝이 없게 느껴지던 낙동강 둑방길을 따라 이사 들어온 김해 삼방동 계내마을은 12년의 삶을 살아온 소년의 컬러풀한 인생이 마치 흑백 무성영화 시절로 돌아간 듯 한 절망감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가 바뀌길 다시금 열두번... 1992년 소년은 청년이 되어 농협에 입사 하였고, 2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지나가는 인연은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평생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 것, 오히려 평생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을 배웁니다. 제 곁엔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것을 나누어 주고, 서로의 삶이 근거리에 있는 동안 그 반경 속에서 서로를 챙겨주던 사람들.

이 거대한 세상 속 흘러가는 삶 속에서 서로를 지켜 주었던 사람들.

 

협에 근무하면서 한때는 그렇게 지나가는 인연들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더 오래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에게 돛이 되어주고, 서로를 저 세상 속에서 나아갈 수 있도록 떠밀어 주는 존재로 남았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청소년 시절, 밤을 새어가며 시와 음악에 대해, 인간에 대해, 꿈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친구는 휴대폰에 연락처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만나며 삶 속에 놓인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 주고, 그로써 지금 여기에 설 수 있게 해주었던, 꿈을 꿀 수 있게,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던 친구들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습니다.

 

협한 마음이지만 제 스스로 몇번은 일부러라도 연락을 하고, 과거의 기억을 벗 삼아 관계를 이어나가려고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달라지기 시작하는 생활 반경, 발 딛고 있는 세계의 차이, 바라보고 추구하는 삶의 간극 같은 것들은 더 벌어지기만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 이상 흘러가는 인연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로웠던 관계의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남이 뜸해지며 어느새 지나간 사람이 되어 지나간 시절들 속에 놓아둡니다. 그들에 대한 감정을 현재에서 몰아내고, 따라서 애착도 미움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분리시켜 박제합니다. 다른 삶에, 다른 세계에 놓였고, 이제 기억이 된 사람들...

이따금 만날 일도 있었지만, 술 마시고 노래하며 삶을 얘기하는 눈앞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럴 수밖에 없는 데는, 그들도 나도 삶 속에서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이 알던 나를 더 이상 나는 모릅니다.

내가 알던 그들도 그들에게는 더 이상 그대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향해, 기억을 겨냥하며, 눈앞의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미 새로워진 현재의 그들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덧씌운 내 기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이 아마 운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겨 가버리듯 그렇게 지나간 시절을, 흘러가는 인연을 지나가도록, 흘러가도록 둘 수 있는 덕분에 또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금번 본·지점간 정기인사로 사무실이 바뀐 직원분들도 있을 것이며, 또한 관내 인사교류로 인해 새해가 밝으면 새로운 삶, 새로운 생활공간, 새로운 사무실에서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직원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시는 분 남아 있는 분 모두 내게 좋은 사람들, 서로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눈앞의 동료인 그들, 현재로서 생생히 존재하는 그들에게 충실하려면, 역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들 역시 언젠가 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현재인 그들을 생생한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자고 다짐합니다.

그 다음 일은 다시 그저 시간에 맡겨두기로 하면서....

 

사랑하는 김해농협 임직원 여러분! 경자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912월 세모에


김해농협외동지점

김 영 수 드림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 계절의 미래가 그러하듯  (0) 2023.02.10
세면기 셀프교체  (0) 2021.03.28
정유년 새해인사  (0) 2020.03.08
2014 첫눈 내리던 날에  (0) 2020.03.08
수빈에게  (0) 202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