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계절의 미래가 그러하듯
1.
며칠 전 입춘이 지났지만,
모든 절기가 그러하듯 계절의 시작은
지금의 계절이 저물기도 전에 찾아 듭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의 음성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믿기지 않을 뿐,
봄은 언 땅 녹여 물 길어 올리는
나무와 풀싹들의 힘찬 생명예찬과 함께
발 딛고 선 모두의 땅 아래에 있습니다.
역사의 미래가 그러하듯,
계절의 미래가 그러하듯,
모든 새로움이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을열고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힘쓰고 애써서 세우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2.
볕바른 창가에 화분들이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어깨동무,
저마다의 기원을 담은 어깨동무,
저마다의 세월을 담은 어깨동무,
저마다의 세상을 담은 어깨동무,
.....
아직은 볕바른 창가에 화분들이 있습니다.
3.
부지런한 세월 속에서
이십년의 세월이란 참으로 아득합니다.
그 옛날 공구 일언에
'흘러가는 것은 물과 같으니,
밤낮도 없이 흘러간다'지만,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삼십대 교수는 오십대 원장이 되어,
삼십대 감골은 오십대 생곡이 되어,
이제는
경험을 씨줄 삼아 지혜로,
실패를 날줄 삼아 교사로,
가르침의 자리가 아니라 가리킴의 자리로,
앞장서는 자리가 아니라 믿어주는 자리로,
밤낮도 없이 흘러가야 함을,
강물과 같이 흘러가야 함을,
알겠습니다.
4.
오래 된 인사입니다만,
오래 전 기약입니다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아직도 저물지 않은 하루처럼,
아직도 여물지 않은 과일처럼,
지엽과 편린에 그칠 작음과,
어린새의 깃털같은 가벼움과,
총기잃은 희미함의 기억을 모아,
새 봄의 인사에 대신합니다.
우리는 서로 잘 지내고 있음을 믿기로 합니다.
5.
잊음없는 기억과
따사로운 악수에
고마움의 인사를
말미에 적어 둡니다.
2023년 새봄,
구미 금오산자락에서
정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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