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야기

산에 오르다...

ebond 2009. 11. 13. 16:24

 

 

언제부턴가 억새는 속으로 속으로

꿈틀거리는 무엇이 있다고 했다.

뒷모습을 보이는 그런 어느 늦은 가을날

억새는 그의 온몸이 햇살로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사랑도 질투도 아닌 것

억새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숨겨진

욕망이었음을

까맣게 몰랐다.

 

햇살이 뿌연 정액처럼 흩뿌려질 때도

억새는 차마

제 욕망을 바람에 싣지 못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애써 욕망을 누르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가 울음이라면

억새는 풀어헤칠 수 없는 억센 욕망이었다.

 

산은 넘어 돌아오지만 선은 넘어 돌아올 수 없는 것.
그날 우리가 넘은 것은 산이었던가? 선이었던가?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