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황경신

ebond 2007. 11. 30. 11:30

 

 

             어릴 때의 내 꿈은 빨간 자전거 하나 갖는 거였다.

             빨간 빛 고운 자전거 하나만 있으면 나는 어디든지 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전거를 꼭 가져할 이유가 없었다.

             자전거는 참고서로, 옷으로, 한끼 밥으로, 카드 할부금으로 부수어져 갔다.

 

             자전거뿐이었을까..

 

             나는 동화를 쓰고 싶었고, 연극을 하고 싶었고, 사막에서 실종되고 싶었다..

             바보같이 굴지 말라고.. 그건 모두 쓸데없는 짓이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인생에서 쓸모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을 알지 못한 채 나는 나이를 먹는다.
             나의 푸르고 아름다운 꿈들은 이제 먼 추억... 가장 밑바닥에서 잠들어 있다.

             아주 가끔 그들을 들여다보며 바보처럼 나는, 운다.

 

 

            

             "어째서 너는 그토록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거야? 그가 물었다.

             아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두려워 한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두려워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어둠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

 

 

             오랜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이 슬픔도 사라질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결국.. 내가 영원히 소유하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 될 것이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우주 어딘가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블랙홀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들에 대해 지니고 있던 사랑을 끌어들이는 공간..

             한때 그들을 사랑했던 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우주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고, 그곳에는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

             나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를 들으며 언제나 여름의 바다를 꿈꾸지만,

             바다를 보면서 를 떠올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인생은 그런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상실되어 있다.

             상실된 부분이 채워지는 순간, 그 나머지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기억들은 더 많은 나이를 먹고 추억이 된다. 오래지 않아 그 추억은 바닥날 것이다.

             한줌도 안되는 알갱이에 먼지만 자욱하여, 그것으로 내 눈이 멀고,

             두 세번 서성대는 것.. 어느 누가 먼지를 털고 낡은 추억의 끝에 마침표를

             찍지 않더라도 스스로 닳아지는 모든 피조물과 같은 것

             이제 나는 낯익은 먼지 속에서 콜록거리며 마침표를 찍으러 간다

             돌아보지 않도록.. 떠날 수 없도록.. 적어도 추억으로는.. 추억이라도......

 

 

 

 

             황경신 /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