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추보다 매운 고추농사

ebond 2011. 11. 21. 10:06

내일이 벌써 立冬입니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가 있지만, 일찍 찾아오는 까닭에
그저 달력에 쓰여진 낙서처럼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입동은, 겨울이 주는 어떤 느낌 때문인지 예사롭지 않습니다.

혹한, 인동, 인고, 한고, 극한...
문명의 혜택으로 인해 겨울은 외출할 때 잠시 불편한 계절이 되어 버렸지만,
겨울은 여전히 빈자의 계절이 아니며, 잠시 불편하기만한 계절은 아닙니다.

지난 주말, 김장 담그러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시골의 겨울 채비도 많이 달라져서,
지금은 김장하나 달랑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고추보다 매운 고추농사 덕분에 빨갛게 익은 고추가
여기저기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대강 거두고,
뿌리를 뽑고, 지줏대를 뽑고, 비닐을 걷어 내고 나면...
거기.... 한숨처럼 먼지만 가득한 고추밭이 펼쳐 집니다.

빈 땅에 봄이 오면 또 땅을 갈고, 비닐을 씌우고,
고추를 심고, 지줏대를 세우고, 줄을 띄우고, 물을 대며...
그렇게 고추보다 매운 고추 농사를 또 이어가겠지요.

농부들이 흘린 땀을 아는지 모르는지,
농부들의 선혈같은 고춧가루를 퍼 부어 김장속을 만듭니다.
농부들의 희망같은 노란 배추 고갱이를 물들이면서...
그렇게 김장김치 한포기가 완성되어 갑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무는 가을, 저무는 한해...
하루는 길고, 세월은 빠른...

건강하시고, 좋은일 가득한 11월이 되시길 빕니다.

게으름 덕분에 저의 가벼운 편지 기다려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몇 년 만에 먼저 편지를 받아보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11월의 어느 아침이 일깨워 줍니다. 감사합니다.

2011.11.7

불암산 자락에서
정준호 드림

 

 

 

 

‘철부지’는 계절을 모른다는 뜻이지요.
계절과 동의어인 ‘철’을 부지(不知)하니까요.
철 모르고, 철없는 모기와 밤마다 씨름하다가 겨울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습니다.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려니, 정교수님 말씀대로 벌써 내일이 입동이네요.

입동은 겨울나기 준비에 들어가는 절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무르익은 가을, 감나무의 감을 딸 때 추위에 배를 곯을 까치를 생각하며

감 몇 개를 남겨 두는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를 ‘까치밥’이라고 하지요.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의 ‘옛 마을을 지나며’>

저희 집 감나무 가지에도 까치밥이 매달려 있는데,

까치를 기다리던 감은 기다림에 지쳐 홍시가 되어

장독대 위로 맥없이 떨어져 개미들의 성찬이 됩니다.
맘은 까치를 기다렸으나 딱새인들... 혹은 개미인들... 뭐 어떠하겠는지요. ㅠㅠ

이처럼 깊어가는 가을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을려고 애를 쓰다 보니,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있다와 없다는 공생하고, 부재는 존재를 증명하듯...

2011.11.7

금바다에서 김영수입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부] 어느 새 봄입니다.  (0) 2012.03.26
[안부] 준비된 공허와 허망한 기대를 반복하며   (0) 2011.12.09
안부  (0) 2011.10.06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0) 2011.06.01
깊은 슬픔  (0) 201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