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nd 2008. 9. 26. 15:36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신비로운 마법의 시간은 곧 지난다. 일상 속에서 사랑은 더디게 부식한다. 생애 처음으로 타인과의 내밀한 친밀함을 경험한 사람은, 미처 아무것도 "계산"하지 못한다.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의 거리를 조정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이기적으로 투정부린다. 자신의 장애와 결핍을 상대방이 온전히 채워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를 맡김으로써 사랑이 성립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사랑은 붕괴되고 문득 이별이 찾아온다. (20 p)

그녀가 사랑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는 성격이 된 것도 이해할 만하다. 모든 게 이렇게 완벽한데 괜히 이상한 사랑에 빠졌다가 삶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얼마나 짜증나겠어? (47 p)

여론조사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창작을 업으로 하는 그 누구라도 모두들 내심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단 한 장의 원고를 위하여,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하여, 단 하나의 컷을 위하여 홀로 감내해야 하는 스트레스의 무게는, 감히 자기 영혼을 숙주 삼아 '없는 세계'를 창조하려는 자가 치러야 할 오만의 대가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고통의 중량은 '순수예술' 작가와 '대중문화'작가 모두의 어깨를 공평하게 내리 누른다. (188 p)

우리는 왜 그토록 극적인 결말을 희구하는가. 아마도 현실이 밋믹하고 구질구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생이 화끈한 '한 방'이 아니라 한없이 이어진 낮은 언덕배기들을 넘은 일의 연속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판타지 속에서만이라도 명료한 느낌을 대신 맛보고 싶은 거다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현실의 시간에서 벗어나 확실하게 분절된 시간의 매듭을 느끼고 빈틈없이 완결된 구조 속에서 내 생의 불완전한 여백을 잠시 잊어버리고 싶은 거다. (200 p)

그러나 지친 영혼을 감싸주는 쉼터이기 전에, 혹은 귀찮아서 벗어던지고 싶은 무거운 짐짝이기 전에, 가족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공동체가 아니었던가요? 나와 똑같은 피와 살과 감정을 가진 타인에게 사랑 또는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맹목적이고 일반적인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그건 파시즘만큼이나 부당한 일일 거예요. 친밀감을 가장한 폭력이 더 위험한 법이잖아요. 가사노동의 알맹이만 쏙 빼먹고는 집밖을 나서는 순간 말끔한 얼굴이 되는 당신, 영화 속 외할머니의 가엾는 희생에 주르륵 눈물 흘리며 속죄의 카타르시스를 은밀히 만끽하는 당신, 그리고 나. 잊지 마세요, 가족은 생생한 욕망으로 살아 펄떡이는 "인간들"의 유기체라는 것을.(237 p)

여자라서 행복하다? 솔직하게 말하자. 여자라는 생물학적, 사회적 성별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쉽기는 커녕 도처에 지뢰가 깔려있다. 여자라서 행복할 일이 얼마나 없었으면, 오죽하면 새 냉장고 하나로 "여자라서 행복해요"라고 부르짖겠는가 (242 p)